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도매금으로 중학교때 보던 빨간 영어책도 끼어넘어간다. 일리가 있다. 요즘처럼 듣고말하는 영어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딱히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고 지금은 조금 달라진 옛날 문법을 중심으로 씌어진 책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다.

 

내가 영어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건 재밌게도 우리말 가로세로 단어 맞추기에서 였다. 두 칸이 비어있고 열쇠는 "눈물의 씨앗". 내 정도 연식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문제지만, 나보다 많이 어리거나 우리나라에서 살아보지 않고 책으로 우리말을 배운 사람이라면 여하한 우리말 실력을 갖추더라도 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왔다. (실은 요즘엔 구글로 검색하면 정답이 0.1초 안에 나온다. 저땐 WWW이 없었다 -_-;;) 2차대전때 유럽 전선에서 연합군 쪽에 독일군 첩자가 섞여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이 미군인 척 했단다. 아마 유럽 사람인 척하면 금방 들통날 것 같고, 미군은 여러 문화가 섞여 있으니 잘 들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미군인지 아닌지 알아보는건 미군이라면 모르기 힘든 질문을 해보는 거란다. 지난해 world series 우승한 팀은 어디지 ? Snoopy의 주인 이름이 뭐지 ? 뭐 이런 정도의 질문 되겠다. 이것 역시 책으로 미국에 대해 공부해서는 알기 쉽지 않다. 문제은행식으로 왼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새로운 문제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요즘 식이라면 Soft Kitty 노래 불러보라고 해도 되겠다.

 

영어를 제대로 배우는 것은 현지에 가서 살아보아야 한다. 원어민 교사로부터 배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발음이야 교정되겠지만, 감정과 어감, 그리고 문화를 제대로 배우려면 현지에 가서도 현지인들과 어울려 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LA에 사는 한인들 1세대는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죽는다. 어려서부터 현지인들과 어울려 자라는 1.5세대 부터는 영어를 제대로 배운다. 그리고 영어를 제대로 배우더라도 한 지방의 영어만 배우는 거다. LA 영어와 문화에 익숙하더라도 보스톤이나 뉴올리언즈에 가서 그게 그대로 통하리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한마디도 안 들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게 미국이라는 국경을 넘어가서, 영국, 독일, 네덜란드, 이태리, 스페인, 러시아, 인도, 노르웨이, 베트남, 중국, 일본 이런 곳에서 온 사람들이 쓰는 영어와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영어 실력이란 것에 대해 겸손해 질 수밖에 없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학생과 포틀랜드 (오레곤주)에서 온 학생 사이에서 대화해 본 적이 있는데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둘은 English Native지만, 둘다 Native라는걸 인식하고 있기때문에 둘 사이에는 대화가 전혀 안된다. 내가 끼면.. 나는 둘이 보기에 영어 먹통이라 그런지 저 둘이 조심스럽게 얘기해서 3자간 대화가 되기 시작한다. ^^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열심히 배우던.. say, tell, speak, talk 의 차이. 동명사와 to 부정사의 차이. must, have to, should, shall, ought to 의 차이 이런거 사실 어감을 알면 외울 필요 조차 없는 거다. 단어가 다르면 어감이 다르다. 동의어 란걸 외는 것은 같은 의미의 단어를 자랑해가며 쓰라고 배우는게 아니라 미묘하게 다른 어감을 제대로 찾아가며 쓰라고 배워야 하는거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성문종합영어를 욕할 이유는 전혀 없다. 원래 책으로는 가르칠 수 없는 내용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욕하는 것이었기때문이다. 성문종합영어, 아주 좋은 책이다. 난 책으로만 영어를 배우고 원어민 속에 던져졌는데 그리 큰 고생 안하고 살아남았다. (물론 그 원어민들은 큰 고생을 했다. 나중에 들었다. ^^) 지금도 난 우리말이 영어보다 훠얼씬 편하다. 반평생을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버린 지금도.

 

그런데 진정한 영어실력은 우리말 실력과 여타 전문 지식에서 나오는듯 하다. 알맹이 없는 빈 영어만 완벽한 발음으로 구사한다고 열심히 들어줄 사람은 없다. 그 알맹이는 전문지식과 우리말 실력에서 온다. 발음 구리고 문법 다 틀려도 알맹이가 좋으면 열심히 들어주고 감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