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라 가야 신라 빛나는 역사 흐른듯 잠겨 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마라 예서 자란 사나이들아 이 강물 네 혈관에 피가 된 줄을 오! 낙동강 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산돌아 들을 누벼 일천 삼백리 구비 구비 여흘 여흘 이 강 위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정의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무찔렀나니 오! 낙동강 낙동강 소리치며 흐르는 승리의 낙동강
두 언덕 고을고을 정든 내 고장 불타고 다 깨어진 쓸쓸한 폐허 돌아오는 아침 햇빛 가슴에 안고 나가라 네 힘으로 다시 세우라 오! 낙동강 낙동강 늠실늠실 흐르는 희망의 낙동강
이은상/윤이상 선생님은 625 동란이 한창이던 시기에 부산 지역에서 이 노래를 만드셨다고 한다. 그 이후 이은상 선생님은 평생을 극우익 운동에 투신하셔서 호의호식하다가 잘 돌아가셨지만,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신 윤이상 선생님은 날조된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시고 69년에 독일로 추방되셔서, 95년에 돌아가신 뒤에도 그 유해마저도 귀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이상 선생님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오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야 가능했다. 43년에 돌아가신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돌아가신지 거의 80년이 넘어서 2021년에야 돌아오실 수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이 노래를 만드신 분을 빨갱이라고 몰다니.. 난독증이 심해도 많이 심하다고 할 것이다.
67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동백림 사건은 졸속 재판으로 대법원까지 일사천리로 갔으며 대법원 판사가 사임하는 등 온갖 상황을 거쳐서 69년에 기소된 대부분이 무죄로 판결이 났지만, 일부는 사형까지 선고되었다. 그러나 70년에 사형수까지 모두 석방했대나. 결국 군사정권이 전 국민을 총칼로 위협한 것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사건이 발생한 60년대 후반, 심지어 70년대 초반까지도 북한이 우리 대한민국보다 잘 살았던 시기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제가 자원이 많았던 북한 지역을 공업기반으로 개발/수탈하고, 남한 지역을 농업기반으로 개발/수탈했고, 전투가 치열했던 남한 지역의 전선 주위에는 그나마 있던 모든 기반이 다 파괴된 반면,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갑자기 시작된 북한 지역에서의 전투는 실제로 휴전선 근방과 북한 동북부 산간지역을 제외하고는 산업 기반의 파괴가 비교적 적었던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 회복이 빠를 수 있었던 것도 한 원인이다. 그 이후 현재의 모습은 비교 불가. 북한은 전세계적으로 최빈국이고 동란 당시의 독재체제가 더 공고해진 반면,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과, 쉽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고, 이번 COVID를 거치면서 다시 한번 그 가치를 전세계에 빛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