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라에서 나와 산지 20년이 되어가니 그냥 덤덤해진다.

이 곳 실리콘 밸리는 재미있는게, 돌아다니는 사람의 절반은 인도사람, 나머지 절반은 중국사람이다. 백인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흑인 보기는 거기서 또 그만큼 더 가야 한다. 물론 실제론, 중국인 처럼 보이는 사람들 중에, 베트남 사람이 상당히 섞여 있고, 일본 사람이랑 우리나라 사람도 그 속에 섞여 있다. 아 물론 굉장히 많은 멕시코 이민들이 잡일을 하면서 산다. 그렇지만 그들은 돌아다니지 않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어디선가 숨어서 일한다.

먹거리는 우리나라 그로서리 (-O-; 식료품가게, 또는 수퍼, 또는 마트 라고 해야 할까. 어느 단어를 써야 덜 생경할까. 생경하다는 단어 조차 생경할지도 모르겠다)로 몇개나 있고, 일본, 베트남, 중국 가게들까지 치면, 못 구하는 식재료는 별로 없어 보인다. 어쩌면 구할 수 없는 식재료는 이미 내가 잊어버렸는 지도 모른다. 어제는 베트남 가게에서 가지랑 호박이랑 양파랑 들기 힘들만큼 잔뜩 사가지고 나오는데 13불 나왔다. 이 농사는 누가 지었을까. 미안할 뿐이다.

영어는 여전히 불편하다. 아침 저녁으로 시간 날때마다 말만 많이 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들으면서 영어 공부를 하지만, 그건 잘 들려도 일상 생활은 여전히 어렵다. 미쿡 오래 살면 영어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말 실력 주는 것은 눈에 보여도 영어 실력 느는 것은 눈에 안 보인다.

TV 별로 관심없다. 틀면 대부분은 영어 채널이고, 일부 일본어/중국어/베트남어/스페인어 채널들이 있고, 또 어느 나라 말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채널도 있지만, 어차피 별 관심은 없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들을 방법이 별로 없어서 언제나 사오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경제/문화에 대한 이해가 딱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수준에서 멈췄다. 고3 되면서 사회와는 담을 쌓았고, 대학 들어가서는 대학의 문화가 있었다. 당시 대학에선 학생들이 대중문화 거들떠도 안 봤다. 나름의 일노래가 있었고, 당시 학교는 최루가스 냄새가 언제나 맴돌던 그런 시절이었다. 분신이 일상이었던..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소식을 들어보면, 상황은 그때랑 별반 다르지 않다! 신기한 것은 일반 국민의 인식은 20년대 일제 치하를 연상시킨다. 전혀 문제의식이 없다.

미쿡에 살아 미쿡 사람이 되어간다. 멀리 우리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조금씩 조금씩 무뎌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