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장을 가면 보통 시나가와에 있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묵는다. 그것은 교통이 매우 편리하기 때문인데, 일단 내가 가야 하는 회사들에 보통은 '걸어서' 갈 수 있고, 전철을 타더라도 몇 정거장 안에 도착할 수 있다. 하네다에선 매우 가깝고, 나리따에 도착하더라도 NEX 타면 거리는 멀지만 몇 정거장 안에 도착한다.

아침에 나와서 전철역으로 걸어가노라면, 전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인파와 마주친다.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바지, 거의 똑같은 옷을 입고 (마치 교복인양) 무표정한 수많은 사람들이, 부딛히지 않고 (이부분이 서울이랑 조금 다른 점인듯) 지나간다.

이들을 가로질러 지나갈때도 거의 부딛히지 않고 지나간다. 물론 상해에서 큰 길 건널때 같은 그런 재미는 아니지만 (이건 거의 매스게임 수준이다. 트럭, 버스, 승용차, 오토바이, 자전거, 보행자, 그 어느 누구도 신호를 지키지 않는, 심지어 신호를 훔쳐보는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다들 느릿느릿 섞여서 제 갈 길로 간다 ㄷㄷㄷ) 이것도 제법이다 싶다.

아마 이들 눈에는 나도, 비슷하게 입고, 똑같이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한 사람이겠다 싶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난 백팩을 메고 있다는 건데. 요즘엔 백팩 멘 사람이 눈에 띄기 시작.

연락이 안되는 친구들 2015. 10. 21. 13:46

동무들 이라고 쓰고 싶지만, 이미 나한테도 생경해진 단어를 굳이 꺼내 쓰기는 뭐하고. 연락이 안되는 친구들을 찾아 보는게 잘하는 짓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보았다. 오지랍 ? 무슨 이유에선가 숨어버렸다면 그냥 숨어있는채로 두어주는게 친구가 된 도리일까. 그냥 궁금한 늦은 저녁.

상으로 받은 공책 2015. 10. 21. 06:09

초등학교 졸업할때 상을 받았다. 중학교 들어가면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한다고 해서, 졸업식 전날, 혼자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았는데, 이발사 아저씨가 장난을 쳤나보다. 아주 하얗게 면도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황당. 그렇게 초등학교 졸업식을 갔다. 내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은 그렇게 머리를 하얗게 깎은 아이가 서 있다.

중학교 들어가서 신을 거라고 사 신은 신은 내 발에 너무나 커서 자꾸 벗겨지는데 그걸 신고, 상을 여러개 받은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상으로 받은 공책이 너무 많아서 아주 무거웠단 기억이 있다.

몇달전에 본가엘 갔다가, 아직도 잔뜩 쌓여있는 그때 받은 공책더미를 보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다니면서도 못 다쓴 정도도 아니고 그냥 남아있다. 저걸 졸업식날 아이들한테 하나씩 나눠주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사실 이것도 굉장히 치기 어린 생각일 수도 있다) 다들 졸업식에 상 하나씩 받았다고 집에 가서 자랑할 수 있었을테고 (공책마다 정성스레 상 하고 찍혀있다). 난 가벼운 가방을 들고 올 수 있었을텐데.

다시 산다면 조금은 더 잘 살 수 있을까. 그냥 미안한 오후.

오십을 바라보는 초딩 동기들이 6학년때 갔던 수학여행을 다시 따라 짚어가보는 추억여행을 떠났다. 300명이 넘던 동기들 중에 Band 하는 친구는 백여명 남짓 되나보다. 몇이 막 떠들더니 하나가 나서서 예약을 주왁하고 지역별로 하나씩 나서서 독려를 하더니 제법 모인듯 하다.

여행지야 뭐 경주지 뭐. 우리땐 마침 우리 수학여행 가기 직전에 식중독 사건이 나서, 남들 다 1박2일로 가는 수학여행을 당일로 다녀왔다.

다들 똑같은 학교 모자 쓰고 캄캄한 새벽에 버스에 나눠타고. 어쩌면 많은 아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그 마을을 벗어나보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 박물관, 에밀레종,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정도를 가보았던가. 경주를 떠나는 버스 정거장에서 행상에게 다보탑 모형을 150원 주고 산 기억이 있다. 250원 부르는 것을 버스가 떠날때 흥정을 하니 150원 까지 떨어지네. 더 싸게 살 수도 있었을까 생각하면서 버스는 떠나고 난 잠이 스르륵.

그 다보탑 아마 아직도 집 어딘가 있을거다. 우리집엔 뭔가 없어지는 것은 없으니까.

여튼 오십을 바라보는 동기들이 추억여행을 떠났다. 우리 수학여행은 당일치기였는데 이 추억여행은 1박2일. 나름 자리잡은 아이들만 왔을 거다. 그때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못갔을 텐데. 어린 나는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다. 아 이젠 아이들이 아니지만, 내 기억속엔 아이들로만 남아있는데, 올라온 사진들엔 어릴적 모습이 조금 비칠듯 안 비칠듯 한 초로의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너무 늦기전에 봐야 할텐데. 헤어질때 다들 그렇게 울었단다.

졸업한지 수십년이 지났으니 달라지는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학교앞에 딱 하나 있던 서점이 사라진건 너무 했다 싶다. 하긴 내가 다닐때 팔던 전공 책들이란 모조리 해적판이었으니 어쩌면 해적판 책들이 정리되면서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앞에 내가 가본게 언제였나 ? 어쩌면 저번에 가봤을때 이미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재빨리 들어가서 볼 일 보고 나오느라고 서점이 없어졌는지 아직 있는지도 생각도 하지 않았나보다.

오늘에서 문득 구글 street view 로 학교앞을 가보니, 서점이 없네. 그쪽은 말끔히 정리되어 버스 정거장 밖에 없고, 가건물에서 책팔던 서점은 없어진지 매우 오래된 눈치.

미안하다. 미안하다.

국밥이라도 사먹어야 하나.